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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요새 견고한 진(1)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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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의 요새 견고한 진

 

Ⅰ. 견고한 진

[고후10:3-5] 3.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1. 신자 안에 있는 견고한 진

신자 안에 견고한 진이 있거나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육신 가운데 살았던 삶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둘째는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을 따라 살기보다 육신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 안에는 사탄이 역사하기 좋은 발판(처소)인 견고한 진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그냥 버려두면 계속해서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쉽게 넘어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통하여 이 견고한 진을 파하여야 한다.

 

2. 견고한 진의 성서적인 의미

사람 속에도 외부에서는 도저히 격파시키지 못하는 암벽 같은 천연 요새가 있다. 성경은 이것을 견고한 진이라고 부른다.

“견고한 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단어, 헬라어 오쿠로마(ochuroma)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의 의미는 “가지다, 붙들다”라는 말이다. “견고한 진”(KJV)이나 “요새”(NASB)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을 강력하게 붙들고 있는 장소이다. 그것은 또한 보루, 성채, 감옥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귀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장소들이다.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견고한 진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이다. 그래서 바울이 의미하는 견고한 진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인간의 모든 이론과 생각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진리가 담긴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철학적인 체계를 말한다. 인간의 이러한 지식은 마치 견고한 성읍이나 요새같이 단단하여 잘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은 마귀의 좋은 서식처이다. 견고한 진 자체가 마귀는 아니지만 견고한 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마귀가 발판을 삼아서 은닉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좋은 처소라는 말이다.

 

3. 견고한 진의 형성과 그리스도인의 견고한 진의 의미(김만식칼럼에서 발췌)

인간의 기억력은 정보은행과 같다. 지성과 감성을 동원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해 놓는다. 혀끝에 맴돌며 생각이 안 나는 경우에 당장 의식으로 불러내지 못할 뿐 그 정보는 기억력에 저장되어 있다. 혼에는 잠재의식의 영역이 있다. 잠재의식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활발하게 움직인다. 학자들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정신활동의 85~90%가 잠재의식에서 일어난다고 추정한다. 기억력은 이 잠재의식 속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에 잠재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 잠재의식은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지쳐서 쉬지도 않는다. 잠을 잘 때 우리 의식은 닫히지만 잠재의식은 아무 통제도 받지 않고 ‘와 신난다. 꿈이다’ 외치며 돌아다닌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 꿈에 나타나 말씀하실 때가 있다. 의식의 방해를 받지 않는 열린 상태이기 때문에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영적 현상을 경험하기가 더 쉽다.

잠재의식이 신념을 형성하는 중심이 된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와 감정 등이 어우러져 현재의 생각을 만든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가 성격, 습관, 행동과 반응을 통제하는 방법 등을 결정한다. 잠재의식은 정보를 모아 마음속에 이미지를 만들어 신념 체계를 세운다. 우리는 이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사람마다 일정한 사고방식(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어 사업운영, 인종문제, 영성, 결혼, 사랑, 하나님에 대해 ‘이것은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재의식에 저장된 정보는 얼마나 자주 듣고 반복해서 행동하느냐에 따라 신념(지배적인 기억)이 되거나 아니면 단순한 정보로 남는다. 이 때 어떤 감정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랑과 애정 어린 포옹을 계속 경험한 어린이는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반면에 형편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학대 받고 거절당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은 어린이는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기 어려운 것은 이 잠재의식 때문이다. 어떤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에는 잠시 달라진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옛 습관으로 돌아간다. 두뇌활동의 상당수가 잠재의식에서 일어나고 잠재의식이 가치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재의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람이 변하기 어렵다.

‘견고한 진’의 헬라어 오쿠로마(οχυρωμα)는 ‘산성, 요새, 피난처’ 또는 ‘고수하다, 집착하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의식과 잠재의식을 포함하는 신념체계가 감옥처럼 우리를 포로로 붙잡아 벗어날 수 없도록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잠재의식은 거짓된 것을 사실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요새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진실은 그게 아니지만 사실로 생각하면 마음속에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나고 그것이 신념체계에 영향을 준다. 우리 의식 속에는 실재가 되어버린 거짓 주장들이 많이 저장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견고한 진’은 내적 전투가 벌어지는 약점들이다. 이것은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잔존하는 쓰레기 같은 옛 습관들이다. ‘견고한 진’은 종종 정욕, 자존심, 쓴 뿌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불만, 질투, 탐심, 미움, 그리고 이와 비슷한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탄은 이 약점들을 요새로 삼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 곧 십자가의 복음만이 그 진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Ⅱ. 견고한 진의 실제들

 

1. 대표적인 옛사람의 성품(방어기제)과 새사람의 성품(그리스도의 마음).

내적 치유의 측면에서 대표적인 견고한 진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살펴보자.

방어기제란 자신의 견고한 진을 보호하기 위한 잘못된 변명, 정당화, 구실을 말한다.

 

1) 옛 사람의 방어기제 (견고한 진)

-바리새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 전통주의, 완벽주의, 일 중독 등

-사랑과 인정(認定)의 결핍: 증오, 분노, 좌절, 억압, 우울증

-거부감: 자기 비하, 열등감

-투사: 내 눈에 비친 다른 사람의 잘못이 곧 내 잘못인데 남을 비난함

-전이: A에 대한 감정을 B에 전가시킴. 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남편에게 전가시킴

 

2)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새사람 (해결책)

-성령과 은혜 안에서 자유함을 누림, 외모보다 마음을 깨끗하게 함(마23:26)

-주안에서 용서, 용납, 화목, 하나됨(엡4:30; 골3:12-14), 주안의 사랑 끊을 자 없음

(롬8:35-39)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요1:12; 벧전2:9; 시139:24)

-내 잘못 회개(잠27:19; 고전10:11)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볼 것(잠23:7)

 

2. 내적 치유 대상의 견고한 진들

 

1) 세상의 사조

a.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free sex”).

오늘날 미국의 교육이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부정하여 무신론자들을 양산했다. 프로이드의 프리섹스는 오늘날 이혼과 가정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b. New Age 운동(“내가 신이다”)와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상대주의와 체제 및 형식 부정).

뉴 에이지 운동은 동방 종교들--불교, 도교, 힌두교 등-과 같이 절대 유일신인 하나님은 부정하고 인간은 누구나 수양을 통해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에도 퍼져 있는 단, 기훈련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절대적인 신앙 표준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상대적인 진리로 격하시키고 권위와 전통을 부인한다.

 

c. 세상의 학문과 문화

학문과 문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이지만 모두가 타락한 인본주의 학문과 문화, 특히 마귀의 영향을 받은 대중문화는 신앙생활에 심각한 견고한 진을 형성한다.

오늘날 TV, 영화, 게임, 책, 만화나 인터넷과 같은 대중문화 수단을 통해 인본주의와 마귀적인 요소가 심각하게 침투되어 있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조차 이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배우, 가수, 유명한 사람 철학인), 책, 음악, 영화, 연극과의 소울 타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일부 십대 소녀들은 자기들이 우상시 하는 가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여, 좋아하는 어느 가수가 죽었을 때 인생의 의미를 잃고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은 스포츠 시즌이 끝나면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견고한 진들’이다.

이런 것들이 정도에 지나치면 중독증세를 일으키고 거부되었을 때 심각한 금단 현상을 일으켜서 건전한 정서생활은 물론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신상언씨가 쓴「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는 가히 이 분야의 예언적인 서적이다. 오늘날 사탄은 영화, 음악, 연극, 미술 등 대중 문화의 전 분야에 침투하여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사탄적인 사상을 불어 넣고 있다. 사탄이 더럽힌 대중문화를 하나님의 문화로 회복시키기 위한 우리의 대안은 “기도하고, 지금, 가서,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민속 문화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민속 문화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속 문화가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문화의 형태를 빌러 사탄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농경 사회인 우리나라도 농경 문화권인 가나안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나 기우제가 각 지방마다 있다. 이런 제사들은 곧 사탄의 무리들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또한 각종 탈춤은 귀신 잔치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우리는 민속 문화 보호나 창달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제 3세계의 카니발 행사는 대부분이 사탄의 사주 아래 행해지는 귀신 잔치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종교적 혼합주의나 (잘못된) 교리나 전통

 

a. 배금주의와 무속주의(기복신앙)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 가고 이 세상에 살면서 복 받는다는 기복신앙은 ‘잘 살아보세’라는 개발 구호와 잘 맞아떨어졌다.

 

b. 업적주의(종교의 “바리새화”)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에 더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c. 전통주의

예수님보다 ‘장로들의 유전’을 더 강조하고 중시하는 전통주의 사상은 배격되어야 한다. 칼빈이나 웨슬레보다는 성령의 새로운 기름 부음과 가르침에 더 귀를 기울이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d. 죽은 정통

고백은 바르나 바른 삶이 따르지 못하며, 화석화된 교리에 묶여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대적하기 쉽다.

 

e. 불건전한 신비주의

건전한 정통을 무시하고, 몰현세적, 이기적, 반사회적이고, 체험 중심적인 개인주의적 신앙인을 양산하기 쉽다. 한국의 혼합주의. 신앙은 기독교식, 복은 불교식, 삶은 유교식이라는 혼합주의 종교는 배격되어야 한다.

 

3) 내적 맹세(inner vow)

“다시는 ×× 사랑하나 봐라” “다시는 내가 당하나 봐라” “다시는 사람 믿나 봐라”와 같이 스스로 분명하게 또는 마음속으로 맹세하는 말을 말한다. 내적 맹세는 결국 자기의 안전을 보호하여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예수님보다는 자기의 맹세를 믿겠다는 말이다. 그 결과 내적 맹세가 나의 성경이 되고 하나님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내적 맹세가 그 사람의 견고한 진이 되어 인간관계를 가로 막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 막는다.

어떤 자매가 젊은 시절에 연애를 하다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그녀는 배신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다시는 남자를 사랑하나 봐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지 않고 친밀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적 치유를 통해 수년 전에 남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올무가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치유를 받은 그녀는 이제 남편에 대해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었다.

내적 맹세의 해독은 사람을 신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가 어렵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도 어렵게 된다(요일 3:21 참조). 또한 과거의 상처로 인해 비록 하나님의 사역일지라도 주저 하고 망설이는 것을 본다.

기타 맹세나 서약들

또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적대적인 어떤 학교나 어떤 사교 단체나 종교 단체에 자신이 서약했거나 부모가 서약하거나 헌신한 경우 내적 치유를 통해 이를 무효화시켜야 한다.

절에 이름을 올림/또는 이념이나 사상에 심취한 경우나 철학사상에 심취한 경우도 나의 마음을 개방하여 그것과 멍에를 같이하게 된다(고후6:14-15; 마16:19). 특히 허무주의 철학에 빠진 사람들, 가수들 중에서도 죽음, 허무를 주제로 부른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인생도 그렇게 마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형제는 니체의 허무주의 철학에 심취한 후 회심하여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심취한 허무주의로 인해 사고가 빈발하고 재앙이 연속적으로 잇따랐다. 나중에 내적 치유를 통해 허무주의를 통해 형성된 견고한 진을 허문 후에야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기억하라, 인간이 만든 모든 학문이나 철학의 견고한 진의 배후에는 악령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3. 저주

여기서 말하는 저주는 잘 되지 못하게 악담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말에 씨앗이 있다는 말이 있다. 부정적으로 내뱉은 말이 올무가 되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1) 스스로 내린 저주(self-curse)

‘나는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내 눈을 왜 이렇게 작을까’ ‘내 눈은 왜 이렇게 클까?’ 스스로 내린 저주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막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떤 자매는 영문을 모르게 다리에 통증이 나서 잘 걷지를 못했다. 내적 치유를 통해 그 원인이 밝혀졌다. 그 자매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 지냈는데, 그녀의 룸메이트가 가진 늘씬하고 예쁜 다리와 비교하여 못생긴 자기의 다리를 저주하고 원망했다. 그녀는 자기의 다리를 원망하고 저주한 죄를 회개한 결과 다리의 건강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2) 다른 사람이 내린 저주

귄위의 질서 상에 있는 사람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목회자가 교인에게 내린 저주는 치명적이다. 나는 어릴 때 자라면서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속을 썩이면 노골적으로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욕설을 해대는 것을 보았다. 그 저주가 어디 갈까. 이런 저주의 말을 타고 귀신이 역사하여 그 사람을 괴롭게 한다.

 

3) 사탄이 내린 저주

무당이나 박수들이 내린 저주를 말한다. 이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발락이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축복으로 끝난 기록이 있다(민22장).

 

4) 종교의 영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방해한 집단이 누구인가? 그들은 다름 아닌 유대주의의 일파인 바리새인들이었다. 바리새인라고 하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너무나 책망하신 집단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은 형편없는 율법주의자들이자 형식주의자들이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한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안식일을 열심히 지켰으며, 자기들이 구약 성경을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을 통해 613개의 자질구레한 율법을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쳤다. 이들은 자기들이야 말로 가장 성경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들의 가르침에 도전을 주고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를 책망하자 마침내는 제사장의 무리들과 공모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또한 사도들의 사역을 가장 방해한 집단들도 십자가와 함께 할례를 주장한 유대주의자들과 바리새인들 및 제사장의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학식 높고 교양 있고 기품 있고 전통 있는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이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제일 방해한 사람들이다. 쉽게 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전통, 성경해석법, 교양, 학식이라는 견고한 진을 통해 역사하는 “종교의 영”(spirit of religiosity)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나는 모든 종교 집단 전체가 종교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록 거듭난 신자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서도 죄를 지으면 본인도 모르게 마귀의 종노릇을 하듯이, 교단이나 종교 단체 내에서 말씀에 바로 서지 않고 소속한 단체의 전통이나 교리체계나 교권을 성경이나 예수님 보다 우위에 두거나, 또는 자기 열심이 지나쳐서 하나님의 의보다는 특정 교단이나 단체의 의를 높일 때 자신도 모르게 종교의 영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성령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각 나라에서 역사하는 종교의 영이다. 이 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종교적 전통과 자신들의 성경해석법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했듯, 성령의 새로운 사역을 핍박하고 있다. 이들은 종교의 영에 사로 잡혀 과거 그곳에서 역사 하신 성령의 사역에 집착한 나머지 현재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대적하여 본인도 모르게 마귀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생각과 이론과 전통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그럴 때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어 종교의 영에서 벗어나서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