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신자와 영의 신자 (롬8:5-14)
Ⅰ. 육신의 신자
1. 육신을 쫓아 산다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든 인간 안에서 타락한 본성이 존재한다. 신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경은 이 타락한 본성을 육신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육신은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몸의 욕구, 즉 식욕, 성욕, 목마름 등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정상이다. 그런데 육신을 쫓아 산다는 것은 그런 몸의 욕구대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 인간 안에 있는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육신을 쫓는 삶의 특성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다. 따라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은 모두 육신을 쫓는 삶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뜻과 마음과 계획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삶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풍습)을 따르는 삶이다. 이 세상의 핵심 가치관은 요일 2:15-16의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삶은 육신을 쫓아 사는 것이다.
3. 육신의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토대를 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어떤 종교적인 편견이나 규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은 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즉 신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고 그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그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육신의 신자이다.
4. 육신의 신자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성령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육신과 성령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신자는 성령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5. 육신의 신자는 육신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갈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마음의 음행까지 포함)과 더러운 것(정결하지 않은 삶)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위에 열거된 죄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성적 타락의 죄, 종교적 타락의 죄, 즉 우상숭배, 인간관계의 파괴하는 죄, 마지막으로 방탕하는 생활을 하는 죄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육신을 따라 살 때, 이런 죄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6. 육신의 신자는 결국 사망을 경험하게 된다.(롬8:6)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확고히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영적 사망을 의미한다. 육신의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결국 영적으로 죽은 상태와 같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 결과, 육신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지 못하며 이런 신자는 불신자와 거의 다름없는 무기력하고 비참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의 뜻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는 삶을 살게 된다.
7.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이런 육신의 신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오래 신앙 생활했다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갖고 있다고 육신의 신자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육신의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신자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게으르고 악한 종이었다고 책망 받을 수밖에 없다.
Ⅱ. 영의 신자(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 영의 신자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한걸음 한걸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자이다.
2. 영의 신자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서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생명이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3. 영의 신자의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4. 영의 신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닮아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삶을 살아감으로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자로 살아간다. 이런 영의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도 많이 받는 신자가 된다.
5. 영의 신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신앙 생활은 우리의 힘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다.
Ⅲ.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1. 육신을 죽여야 한다.(롬8:12-13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 몸의 행실은 육신의 행실을 의미한다. 신자는 우리의 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죽여야 한다. 과거의 많은 신자들이 고행을 하며 자신의 몸을 괴롭게 했다. 그것은 육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죽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육신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가 육신을 도모시키는 일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즉 육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2)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육신의 특성대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더 앞세우는 생활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삶이다. 하나님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삶이다.
3) 육신의 생각을 쫓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염려, 근심, 미움, 거짓, 시기, 질투, 교만, 부정적인 생각 등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육신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육신이 팔팔해진다. 육신이 더 강하게 우리를 유혹하게 만든다. 이런 육신의 생각을 순간 순간 버리고 반대 생각으로 채워야 한다.(예: 미움은 사랑으로)
4) 안목의 정욕을 도모하는 것들을 보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좋지 않은 프로그램들, K1 시합, 지저분한 잡지나 만화나 영화들, 인터넷의 음란한 사진이나 동영상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육신을 팔팔하게 살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육신의 죄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다.
5)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듣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고, 육신을 키우는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가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뉴스나 내용들, 유행가들,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들을 무심코 들어서는 안된다. 특별히 유행가를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유행가는 가사에다 멜로디를 적절히 붙인 것이다. 요사이 대부분의 유행가는 다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고 음란하고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부정적이고 음란한 가사는 그 자체만 들어도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에 멜로디가 붙어 있기 때문에 좋지 않는 유행가는 영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유행가들은 육신을 팔팔하게 살아나게 한다. 혹시 들을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6)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 가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술집, 춤추는 곳, 비디오가게, 노래방, PC방, 영화관도 주의해야 한다.
7) 이런 것들은 육신을 생생하게 힘 있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다 멀리해야 한다. 신자 가운데 이런 것들에 자신을 마음껏 내버려두면서, 자신이 왜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이다.
8) 이런 모든 육신을 죽이는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하는 것이다.
2. 성령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1) 우리가 영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을 쫓아 사는 삶,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삶,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교통하심의 의미는 교제, 비전과 마음을 나눔, 동행과 동역, 지시와 인도 등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떤 능력과 은사를 주시는 것 이전에, 우리의 인도자로 우리와 교제하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의 영을 통해서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아니다. 로마서 8장 16절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마음이 아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한다. 성령님의 음성은 우리의 마음이 아닌, 우리의 영으로 듣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지성, 감정,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영에는 양심과 직관이 있다. 특별히 영 안에 있는 직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님의 음성은 결코 어떤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성령님께서 신자의 영에 말씀하시는 것이다.
4)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에 말씀하시는데, 어떤 분명한 문장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으로 말씀하시기도 한다. 때로는 방언을 할 때,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영(마음) 안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통하여 많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조심스럽게 영혼의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영혼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5) 물론 모든 직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떤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통찰력이다.
6) 따라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지성을 발동시키면 안된다. 우리의 영을 발동시켜야 한다. 이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초이성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소욕을 쫓아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신자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순간순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의 소욕을 일으키신다. 우리는 그 성령님의 소욕을 순간순간 쫓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영의 신자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쫓아 불신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소욕에 순종하는 신자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신자이다.
육신의 신자와 영의 신자 (롬8:5-14)
Ⅰ. 육신의 신자
1. 육신을 쫓아 산다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모든 인간 안에서 타락한 본성이 존재한다. 신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성경은 이 타락한 본성을 육신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육신은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몸의 욕구, 즉 식욕, 성욕, 목마름 등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정상이다. 그런데 육신을 쫓아 산다는 것은 그런 몸의 욕구대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 인간 안에 있는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육신을 쫓는 삶의 특성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다. 따라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은 모두 육신을 쫓는 삶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뜻과 마음과 계획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삶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풍습)을 따르는 삶이다. 이 세상의 핵심 가치관은 요일 2:15-16의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삶은 육신을 쫓아 사는 것이다.
3. 육신의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토대를 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어떤 종교적인 편견이나 규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은 다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즉 신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고 그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그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육신의 신자이다.
4. 육신의 신자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성령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육신과 성령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신자는 성령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5. 육신의 신자는 육신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갈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마음의 음행까지 포함)과 더러운 것(정결하지 않은 삶)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위에 열거된 죄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성적 타락의 죄, 종교적 타락의 죄, 즉 우상숭배, 인간관계의 파괴하는 죄, 마지막으로 방탕하는 생활을 하는 죄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육신을 따라 살 때, 이런 죄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6. 육신의 신자는 결국 사망을 경험하게 된다.(롬8:6)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확고히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영적 사망을 의미한다. 육신의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결국 영적으로 죽은 상태와 같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 결과, 육신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지 못하며 이런 신자는 불신자와 거의 다름없는 무기력하고 비참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의 뜻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는 삶을 살게 된다.
7.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이런 육신의 신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오래 신앙 생활했다고,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갖고 있다고 육신의 신자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육신의 신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신자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게으르고 악한 종이었다고 책망 받을 수밖에 없다.
Ⅱ. 영의 신자(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 영의 신자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한걸음 한걸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자이다.
2. 영의 신자는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서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생명이 넘치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3. 영의 신자의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4. 영의 신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닮아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삶을 살아감으로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자로 살아간다. 이런 영의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도 많이 받는 신자가 된다.
5. 영의 신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신앙 생활은 우리의 힘으로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다.
Ⅲ.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1. 육신을 죽여야 한다.(롬8:12-13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 몸의 행실은 육신의 행실을 의미한다. 신자는 우리의 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죽여야 한다. 과거의 많은 신자들이 고행을 하며 자신의 몸을 괴롭게 했다. 그것은 육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죽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육신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가 육신을 도모시키는 일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즉 육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2)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육신의 특성대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더 앞세우는 생활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한 삶이다. 하나님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삶이다.
3) 육신의 생각을 쫓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염려, 근심, 미움, 거짓, 시기, 질투, 교만, 부정적인 생각 등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육신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육신이 팔팔해진다. 육신이 더 강하게 우리를 유혹하게 만든다. 이런 육신의 생각을 순간 순간 버리고 반대 생각으로 채워야 한다.(예: 미움은 사랑으로)
4) 안목의 정욕을 도모하는 것들을 보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좋지 않은 프로그램들, K1 시합, 지저분한 잡지나 만화나 영화들, 인터넷의 음란한 사진이나 동영상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육신을 팔팔하게 살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육신의 죄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다.
5)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듣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고, 육신을 키우는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가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정적인 뉴스나 내용들, 유행가들,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들을 무심코 들어서는 안된다. 특별히 유행가를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유행가는 가사에다 멜로디를 적절히 붙인 것이다. 요사이 대부분의 유행가는 다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고 음란하고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부정적이고 음란한 가사는 그 자체만 들어도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에 멜로디가 붙어 있기 때문에 좋지 않는 유행가는 영적으로 우리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유행가들은 육신을 팔팔하게 살아나게 한다. 혹시 들을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6)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 가는 것도 육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술집, 춤추는 곳, 비디오가게, 노래방, PC방, 영화관도 주의해야 한다.
7) 이런 것들은 육신을 생생하게 힘 있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다 멀리해야 한다. 신자 가운데 이런 것들에 자신을 마음껏 내버려두면서, 자신이 왜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이다.
8) 이런 모든 육신을 죽이는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하는 것이다.
2. 성령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1) 우리가 영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을 쫓아 사는 삶,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삶,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교통하심의 의미는 교제, 비전과 마음을 나눔, 동행과 동역, 지시와 인도 등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떤 능력과 은사를 주시는 것 이전에, 우리의 인도자로 우리와 교제하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의 영을 통해서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아니다. 로마서 8장 16절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마음이 아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한다. 성령님의 음성은 우리의 마음이 아닌, 우리의 영으로 듣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지성, 감정,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영에는 양심과 직관이 있다. 특별히 영 안에 있는 직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님의 음성은 결코 어떤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성령님께서 신자의 영에 말씀하시는 것이다.
4)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영에 말씀하시는데, 어떤 분명한 문장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으로 말씀하시기도 한다. 때로는 방언을 할 때,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영(마음) 안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통하여 많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조심스럽게 영혼의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영혼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5) 물론 모든 직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떤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통찰력이다.
6) 따라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과 지성을 발동시키면 안된다. 우리의 영을 발동시켜야 한다. 이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초이성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소욕을 쫓아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신자 안에 계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순간순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 안에 성령의 소욕을 일으키신다. 우리는 그 성령님의 소욕을 순간순간 쫓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영의 신자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쫓아 불신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소욕에 순종하는 신자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신자이다.